‘철원 꺽지문화마당’ – 장애인 부부의 꿈, 철원에 싹트다

By |2006-07-25T18:36:07+00:007월 25th, 2006|옛 게시판/옛 회원게시판|

경향신문 – [피플]장애인 부부의 꿈, 철원에 싹트다 ‘꺽지문화마당’

딸랑, 딸랑, 딸랑….

강원 철원군 갈말읍 문혜5리 ‘텃골’. 맑은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처마 밑 청동 풍경(風磬)이 바람따라 흔들거린다. 자그마한 운동장이 딸린 아담한 교사(校舍). 김규성씨(42)가 목발에 의지한 채 풍경 소리처럼 맑게 웃고 있었다. 9년 전까지 문혜초등학교 대곡분교였던 이곳은 1년 전 ‘철원꺽지문화마당’(www.kkeokji.com)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았다. 김씨와 아내 이희경씨(36)가 체험캠프, 기타·도자기·천연염색 교실 등을 운영하는 장소다.

부부는 모두 장애인이다. 김씨는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불편하다. 이씨도 어렸을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팔에 의수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장애인운동을 했고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장애인운동단체에서였다.

김씨는 원래 베이스 기타리스트였다. 음악학원 강사로 일하거나 ‘밤일’을 했다. 음악을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1987년 친구 권유로 처음 장애인단체에 나가보았다. 그전까지 장애인 문제엔 별 관심이 없었다.

“장애인 문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니 화가 치밀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왜 ‘같이 죽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가더군요. 장애인이 세상을 사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었죠.”

장애인을 보는 새 잣대를 만들자며 장애인운동에 뛰어들었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입안과 특수교육진흥법 개정 등을 위해 애썼다. 차일피일 미루던 미국 유학도 포기했다. 그렇게 15년을 일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밀려왔다.

그같은 상태를 벗어나고자 찾은 활로가 지역문화활동이었다. 10년 전부터 남몰래 가슴 속에 품었던 일이다.

2002년 3월 철원을 처음 찾았다. 지역문화센터로 사용할 폐교를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 폐교로 나온 대곡분교 입찰에 참여해 낙찰됐다. 그때부터 꼬박 1년여의 시간과 땀을 투자했다. 김씨와 선·후배가 힘을 합쳐 새로 마루를 깔고 페인트를 칠했다.

“장애인 3명이 했으니 진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루를 까는 데만도 3개월이 걸렸으니까요. 하지만 폐교가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걸 보는 재미로 힘든 줄 몰랐지요.”

인근 주민들이 도왔다. 지역건설업체 사장은 중장비가 필요한 보수공사를 실비로 맡아줬고 전 교장선생님은 꽃사슴을 기증했다. 직접 기른 푸성귀를 한 소쿠리씩 들고 오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괜히 마을을 어지럽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6개월째 되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문을 닫은 학교’였던 곳이 ‘꺽지문화마당’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화적 휴식을 위한 동시대인의 공간’을 모토로 정했다. 대도시에 비해 열악한 중소도시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간으로 키우겠다는 취지다.

처음 기타교실로 강좌를 시작했는데 인근 주민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방학을 이용한 글쓰기·논술 등 어린이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 찻방에 모여 차도 마시고 마을 회의를 연다. 다른 지역문화센터와 차별되는 점은 장애아동 및 부모

모임을 많이 유치한다는 것. 장애인이 만든 곳이다보니 계단이나 화장실 등에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숨어있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지요. 그런 면에서 이곳에선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도 있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어요.”

지난해 11월 아내 이씨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내려왔다. 처음엔 낯선 곳에서 겨울나기가 너무 힘들고 남편 모습이 답답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꽃 옮겨 심고 잡풀 뽑고 하는 일이 재미있다며 살며시 웃었다.

부부는 꿈 하나를 꾸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 고교 과정에 글쓰기를 지망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다. 가을 부모모임을 여는 등 착실히 준비해 내년 봄쯤 문을 열 생각이다.

“장애인은 무엇이든 준비가 빨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대안학교에선 그런 점을 보충해주고 글쓰기에 재능있는 장애학생이 대학에 가서 할 것을 미리 준비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부부는 여름 한철을 정신없이 보냈지만 곧 겨울 날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더 바빠질 것 같다.

〈철원|글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