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 회원이 지은 동화 ‘우리학교’ 함께 읽어 보아요

By |2007-02-13T05:19:49+00:002월 13th, 2007|옛 게시판/옛 회원게시판|

평화길라잡이 2기로 활동중인 김서정회원님이 쓰신 동화입니다.

우리 학교

봉고차 오는 소리가 가까이 들렸어요.

누리는 대문을 열고 얼른 골목 어귀로 뛰어갔지요. 그러고는 운전석에 있는 교장선생님에게 인사를 했어요.

차창을 내린 교장선생님이 말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일어나니까 힘들지.”

누리가 말했어요.

“선생님도 …… 저 때문에 …… 일찍 일어나야 …… 하시잖아요.”

“누리도 이제 한국말 곧잘 하네.”

누리는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누리가 다니는 학교는 일본에 있는 조선 학교예요.
조선 학교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재일 조선인들이 만든 민족 학교이지요.

누리를 태운 봉고차는 도쿄 구석구석을 돌았어요. 한 시간이 지나자 차 안에는 아이들 소리로 가득했고, 봉고차는 이 층짜리 낡은 건물에 다다랐어요.

아이들이 학교 안으로 쪼르르 들어갔어요. 하지만 누리는 벽에 금이 쩍쩍 가 있는 학교 건물을 잠시 바라보았어요.

교장선생님이 누리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 우리 학교는 절대 문 닫지 않는다.”

누리가 다니는 학교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제2초급학교가 있는 에다가와 땅은 원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어요. 쓰레기 소각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올림픽을 한다고 조선 사람을 강제로 이곳으로 쫓아냈어요. 갈 곳이 없던 조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에다가와에 살아야 했어요.

1945년에 광복이 되자 조선 사람은 학교부터 세웠어요.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지요. 이렇게 시작된 조선 학교가 다시 일본한테 쫓겨날 위기에 처했어요.

누리는 고개를 돌려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을 바라보았어요.

“우리는 언제 특수 우레탄이 깔려 있는 운동장에서 놀아 보나. 아니, 저 운동장이라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리는 슬금슬금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교실로 들어갔어요.

누리가 3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한복을 입은 선생님이 방긋 웃으셨어요.

“누리가 꼴찌니까 오늘은 누리가 해볼까?”

누리는 책가방을 자리에 놓고는 칠판 앞에 서서 말했어요.

“오늘은 12월 1일 금요일이에요.”

누리가 이 말을 일본말로 하자, 아이들이 따라했어요.

“오늘은 12월 1일 금요일이에요.”

누리가 이 말을 한국말로 했어요. 아이들이 또 따라했어요.

잠시 뒤 아이들 얼굴이 밝지 않았어요.
사실 오늘은 시험 보는 날이거든요.
선생님이 사회 과목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어요.
아이들은 시험지를 받고는 낑낑거리며 답을 썼어요.

시험이 끝나자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달려갔어요.
운동장에 있는 놀이시설이라고는 낡은 미끄럼틀과 그네, 철봉뿐이었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시험이 끝났기에 마냥 신나기만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비를 피해 교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누리는 문득 이웃에 있는 일본 학교가 부러웠어요.
일본 학교에는 체육관이 있거든요.

“어, 교실에도 빗물이 떨어지네.”

누리가 재빠르게 양동이를 갖다 놓았어요.

얼마 뒤 누리는 다시 교장선생님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왔어요.

골목 어귀에서 누리 엄마가 누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누리 엄마는 교장선생님을 보고는 인사를 했어요.

누리 엄마가 말했어요.

“교장선생님이 너무 애쓰십니다. 그래, 다음 재판은 언제인가요?”

교장선생님이 말했어요.

“조만간에

열린답니다. 하지만 잘 될 겁니다. 우리 동포도, 양심 있는 일본 사람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도와주고 있으니 학교가 문을 닫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누리의 학교는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에요.
도쿄 도지사인 이시하라가 학교 운동장과 학교 건물 일부를 다시 내놓으라고 재판을

걸었거든요.

재일 조선인은 광복이 되자 곧 조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조국이 금방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았어요.
재일 조선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했어요.
그래서 일본에 남아 조국이 통일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에다가와를 떠나지 않기로 한 재일 조선인은 일본 정부에 요구했어요.

“당신들이 우리를 강제로 이곳에 오게 했으니 이 땅을 우리에게 싸게 파시오.”

“알겠소. 그러나 운동장은 팔 수 없습니다.
공짜로 빌려 줄 테니 마음껏 사용하시오.”

이렇게 해서 조선 학교는 육십 여 년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시하라가 운동장 사용료를 내거나 아니면 운동장을 내놓으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거예요.
이시하라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조선 사람이 원했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조선 사람을 몹시 싫어한대요.

교장선생님이 텅 빈 봉고차를 몰고 학교로 돌아갔어요.
집 안으로 들어간 누리는 할아버지에게 시험지를 보여 주었어요.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그렇지. 할아버지 고향은 함경북도 함흥이고,
아버지 고향은 경상북도 청도군, 누리도 경상북도 청도군.
어이구, 똑똑해라.”


누리가 말했어요.

“할아버지. 그럼 …… 저는 조선 사람이에요 …… 한국 사람이에요?”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조선이고 한국이고 중요하지 않아. 같은 민족이니까.
이제 싸우지 않으니까 곧 통일이 될 거야.
우리가 일본에 살면서 꼭 해야 할 것은 바로 한국말과 글을 잊지 않는 거야.”

그 말에 누리는 조선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누리는 그날 밤 나쁜 꿈에 시달렸어요.

“조센징은 조선으로 돌아가라. 왜 남의 땅에 조선 학교를 세우고 그러냐?”

다음 날 누리는 봉고차에서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란 글자가 지워져 있는 것을 보았어요.
누리가 그 이유를 교장선생님에게 물었어요.

교장선생님이

말했어요.

“우리

학교에 다니는 너희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런 거야.”

봉고차는 잔뜩 흐린 거리를 천천히 달려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