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수원 고경아회원님이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교류사업에 다녀 온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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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길라잡이하시는 여숙선생님을 비롯하여 한국참가자들은 서울경기 합해서 10명이 참가했습니다..
작년에 다녀왔어야 할 일정인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미뤄져서 3월1일부터 4일일정으로 도쿄와 치바현에 다녀왔습니다.
역사를 전달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필드워크로 세곳의 평화자료관을 들렀으며 저녁에는 BC급전범자(?)의 아들에게서 BC급전범에 관한 강의와 토론을 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필드워크로 도쿄 근처 치바현에 있는 전통주를 만드는 공장견학을 했습니다.
10명의 한국참가자와 평균7명정도의 일본참가자들이 3월1일부터 4일까지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상근자나 사무실이 없이 활동하는 도쿄지부의 사정을 볼때 준비하는데 여러어려움들이 있었을터인데 잘 준비해줘서 참가자들 모두 기쁨가운데 행사를 마쳤습니다.
첫날.. 도쿄 요요기숙소에서 짐을 풀다
2시20분 비행기였으나 11시30분에 만나 수속밟고 점심먹고 잠시 면세족(?)들 구경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아나비행기였습니다. 흠..비행기도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 멀미가 날 수 있다 거..-_-;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지날때, 서울하늘에 검은 띠속에 도시를 보는 마음 참 착잡했습니다. 대기오염 대기오염..그랬지만 오염띠 밖에서 도시를 바라다보니 맘이 보통 심난해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도쿄에 도착해서 전철 여러번 갈아타고 요요기숙소에 도착하여 짐 풀고 간단한 소개로 첫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요기까지 혼자서 한 번도 가본 적없는 종원이가 우리 일행을 요요기까지 안내한다는 현실에 모두 약간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공항에 마중나와준 테루미 덕분에 조금 헤매고 숙소까지 왔답니다. 테루미는 아시아나항공에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하네요.
둘째날, 역사문제를 생각하는 필드워크
7시30분 아침식사를 시작으로 하루 긴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태평양전쟁때 미군의 폭격이 굉장했다던 가와사키시에서 운영하는 평화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밀집지역이었으며 전쟁때 공습으로 초토화되다싶이 된 도시, 전쟁후에는 미군이 점령하여 사용하던 부지를 반납받아 시에서 기념관을 지어 여러 역사적인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미군 사용 부지반환투쟁에는 여러단체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 힘으로 평화관이 탄생했으며 평화관안에는 여러 자료들을 전시해두고 있었습니다.
1992년 4월 가와사키시가 ‘시민의 평화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평화를 바라는 시민교류의 장’이라는 테마로 개설한 평화관이었습니다.
시디, 비디오, 책, 증언자료, 등..개인적으로는 영상자료가 많다고 느꼈는데 다른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 사람에 의한 자연의 파괴, 인권, 빈곤 등의 코너를 통하여 전쟁에 대한 생각하는 코너들이 있었으며 식민지지배에 관한 코너도 존재했지만 지배했었다는 이야기뿐 그 지배로 인하여 고통과 아픔에 대한 것은 존재하지 않아 좀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담당자는
“그것이 정치이므로 어렵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잘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 만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두번째 방문한 곳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이었습니다. 2002년 12월 유지에 의해 임의단체 ‘여성들의 전쟁과평화인권기금’이 설립되어 2003년 6월 특별비영리활동법인으로 전환, 2005년 8월에 이 자료관을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설립취는 ‘전시하에서의 여성들의 피해와 군에 의한 가해사실을 기록하며, 기억에 남겨 평화와 비폭력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거점을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 큰 아이가 중1의 나이즈음의 여성들이 일본군인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사회로 부터 버림받으며 살아왔다는 호소에 갑자기 목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앞으로 가렸습니다. 하마터면 ‘컥~’하고 입밖으로 거친 울음소리가 터져나올뻔 했습니다. 지난날에 대구 KYC 나가사키 기행갔을때 만주에서의 그들의 만행을 접했을때도 그랬고 그것이 한 두번 아는 사실도 아닐터인데 우리 딸아이의 삶과 나의 삶, 여성이라는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는것도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딸이요, 누나요, 아내요, 어머니인 여성들을 국가차원에서 강간,성폭행하도록 한 일본이라는 나라를 용서할 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병사들로 하여금 강간,폭행하도록 허용했다는 측면에서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번째 방문한 자료관은 ‘평화기념전시자료관’이었습니다. 2001년도에 개관하였으면는 평화기념사업특별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전쟁은 일본인의 삶이 얼마나 힘겹게 하나’라는 컨셉으로 은급결격자, 전후강제억류자, 귀환자들의 코너를 통해 물품들을 통해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으로 인해 일본인의 어려운 삶의 전달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의 반성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오로지 일본인들의 삶이 어려웠다.. 는 ..
갑자기 ‘요코의이야기’라는 책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는 731부대의 병사였을수도 있다는….
귀환자들의 이야기는 병사들의 가족 등 만주에 있던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겪었는지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심하게 멀미가 났습니다.
필드워크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시간에는 BC급전活??) 아들게게서 BC급전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참가자인 이귀회씨의 말을 빌리자면 본래 섭외할때는 한국말을 잘 하신다하셨다는데 거의 못하시고 강연이라는 것이 서툴고 낯설었던지 본래의 취지에서 많이 벗어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BC급전범자라는 것을 접하고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의해주신분은 본래 일정보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본교포들에게 서운했던 맘을 많이 토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BC급전범이라니 좀 생소했지만 태평양전쟁후 전범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죄의 경질에 따라 ABC급으로 나누어 처벌을 했던모양입니다. A급전범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BC급에 관한 것은 생소했었습니다. 사전모임때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사실 기대도 많았습니다..
BC급전범중에는 조선인이있었으며 사형당한 이도 있으며 복역을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조선인이 왜 BC급전범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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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말 식민지의 청년들은 선택이 없었다. 군에 끌려가던지, 강제노동현장으로 징용되던지,..이들이 비록 모집에 동의해서 갔다할지라도 징병제 식민지시대였음을 인식한다면 왜 군대에 갔느냐로 시작해서는 아니된다. 또한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포로들을 관리하는 직업을 가진 군속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을 결정하거나 지휘에 있는것이 아니라 포도들을 관리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전쟁후 포로들의 익히 얼굴을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모두 강한 분노를 드러냈고 일본군고위관리들은 이 군속들이 자신들의 명령을 어기고 너무 심하게 포로들을 다루었다는 입장으로 바꾸어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억울한 BC급전범이 되어갔다.
BC급전범자가 아니라면 BC급전범자가 아닌 ‘억울한식민지청년(?)’이든 뭐든 이를테면 ‘양심수’처럼 다른 이름을 만들어 불러야한다. 왜 자신들을 BC급전범자, 아버지라고 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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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재일동포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나아가 BC급전범자의 가족이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 아들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본부에 우미정간사가 같이 교류회에 방문해주었습니다. 참가들이 십시일반해서 1만4천엔을 걷어서 교통비로 전달해주었습니다. 섬세한 서울KYC하준태국장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생각했습니다.
본부의 우미정간사는 질문을 통해 왜 아직도 그들이 지어준 BC급전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느냐며 한국의 양심수처럼 뭔가 다른 단어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의한다. 왜 스스로 전범자의 아들이라 규정하는가?
강사님과의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 밤11시가 되도록 이어졌습니다.
셋째날… 환경을 생각하는 필드워크
환경필드워크에서는 치바현에서 일본전통술을 마시는 공장견학과 함께 후에 전통술의 재료인 쌀을 지으시는 농부와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술공장(?)사장.. 균과 함께 더불어살아가고 있다.. 사람도 사회도 발효되면 나쁘지 않다..뭐 이런 강의를 술공장견학내내 전해주셨는데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사회가 발효되어야된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사람이 발효되면 웃음이 나온답니다. 컥~!
땅을 갈아엎지 않고(갈아엎으면 온난화의 주범인 매탄가스가 나온다니..) 유기농으로 쌀농사를 짓는 농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모두 놀라워했습니다다. 우리가 너무 술을 재미있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감동(?)하셨던지 6병을 교류회때 쓰라고 주셨답니다. 마지막밤이니 이 술을 어떻게 마셨을지 감잡으셨겠죠?
넷째날~ 뱃속에 술가득 만남의 기쁨가득 숙제 가득 실고 돌아옴
아침이 밝아 5시가 다되어 교류회마치고 잠시 자고 하준태국장과 박종원실무자는 평가회의차 남고 나머지 일행은 10시20분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니 얼마나 바쁘게 서둘렀을지 ..
공항에 도착하여 참가자들 소감을 간단히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사후평가모임은 온라인,오프라인 여러제안은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오프라인이 필요하다고 더 났다 판단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참가자중 한 분이 수욜밤이 아니면 안된다는 의견이고 서울 경기가 같이 만나야하니. 가능하면 강남역근처에서 오프라인으로 평가모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KYC는 공익적회원활동모임을 통해 참여와나눔을 실천하는 단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횟수로 3년차를 지나는 교류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습니다. KYC비전, 동북아국제평화역량을 구축하는데 교류회가 담당해야할 몫이 아닌가 하구요..
아직 사진이 없어 올려드리지 못합니다. 접수되는대로 따끈따끈한 서울경기KYC와 KEY도쿄와의 교류회사진을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수원에서 고경아였습니다~~~ 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