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되다

By |2007-09-17T01:42:23+00:009월 17th, 2007|옛 게시판/옛 회원게시판|


이시우 작가 보석 석방, 대책위 18일 석방 환영식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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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 오후 5시경 이시우 작가가 보석 석방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나마 이렇게 빨리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힘을 써주신 것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4일 오후 5시경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평화활동가이자 통일뉴스 전문기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그립던 가족과 지인들의

뜨거운 포옹을 받으며 보석으로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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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인 김은옥 씨와의 포옹.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1월 강화도 자택과 작업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후해 집을 떠난지 8개월여, 4월 19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검거된 지 5개월여 만에 남편을 품에 안은 부인 김은옥 씨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그러나 48일간의 생사를 넘나든 단식투쟁과 아직도 복식중인 탓인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은 아직

초췌해보였다. 여느 출소자와 달리 6박스에 달하는 책이 그나마 그의 마음의 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주교인권위 변연식 위원장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 등의 환영을 받으며 출소한 이시우 작가는 서울구치소 인근 식당에서 환담을 나누던

중 한국진보연대(준) 오종렬, 정광훈 공동준비위원장의 보석석방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밥을 끓여 만든 죽을 앞에 두고도 연신

원로들과 지인들에게 전화로 출소 인사를 나누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한 이 작가는 집으로 돌아가 쉬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시 서울구치소

정문 앞 대기실에서 오종렬.정광훈 공동위원장의 출소를 기다렸다.



이 작가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보석 석방에 대해 “재판부가 바뀌면서 판사님께서 상당히 전향적으로 검토를 해줬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또 하나는 정상회담이 되고 하는 분위기가 아무리 없다 없다 하더라도, 교도소 담벼락을 넘어오지 못한다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48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에 대해 “단식 42,43일째 가니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구속 때문에 내가 옥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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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근 식당에서 환영나온 지인들과 환담의 자리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또한 진행중인 1심 재판에 대해 “창작의

문제로 초점이 잘 잡혀가면 국가보안법과 창작의 자유문제로 연관되면서 쟁점이 되지 않을까”라고 예측하고 “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참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법정에서의 본격 공방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정상회담 의제로 평소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온 유엔사와 NLL(서해상 북방한계선) 문제등이 포함된 평화체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대해 “역시 대세가 그리로 갈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라고 평했다.



공동위원장의 출소 소식에 더욱 많은 축하객들이 서울구치소 앞에 모이자 즉석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황순원 상황실장의 사회로 간단한 이시우 작가

출소 환영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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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구치소 앞 대기실에서 석방 환영식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환영식에서 이시우 작가는 “국가보안법으로

제가 갇힐 줄을 전혀 몰랐는데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에 보면 해방직후의 상황을 ‘한국은 거대한 걸어다니는 시대착오증’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보니까 지금까지 그 상황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며 “아직도 우리의 상식이나 뇌리 속에 해방직후의 그 잔재가 계속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보석으로 빨리 풀려나 다행스럽다며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참가자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너무 기쁘다”며 “국보연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밖에서 도와주셔서 아마 이런 좋은 소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사의를 표하고 “국가보안법이 마지막 폐지될 때까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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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일간의 단식을 마무리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과 함께 한

이시우 작가 부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시우 작가는 출소한 오종렬.정광훈

공동위원장과 만나 석방 환영식에 참석한 뒤 부인과 함께 강화도 자택으로 향했다.



‘평화 사진작가 이시우 석방 대책위'(간사 고정호)는 오는 18일 오전 11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공식 출소환영식을 가질

예정이다.






















<인터뷰> “평화체제

논의,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


□ 먼저 출소 소감은?

■ 저는

상당히 오랜 기간을 있을 생각을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뜻밖의 소식이었고, 이렇게까지 된 것은 밖에서 힘써주신 변호사님들과 원로

어르신들, 가족, 대책위 분들의 전적인 공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감사드린다.

□ 일반적으로 국가보안법 사범들에 대한 보석이 많지

않고, 혐의 내용도 상당히 무거웠는데 이렇게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 저도 검찰에서

걸었던 형량이라든가 이런 걸로 봤을 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예상했는데 재판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재판부가 바뀌면서 판사님께서 상당히

전향적으로 검토를 해줬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그 공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상회담이 되고 하는 분위기가 아무리

없다 없다 하더라도, 교도소 담벼락을 넘어오지 못한다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 특히 48일 간의 오랜

단식 과정 등을 겪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전해준다면?

■ 뜻밖에 구속이 되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확 느낌으로 다가와서,

분노라든가 저항이라기 보다도 슬픔 같은 것이 크게 다가와서 단식하게 됐는데, 단식하면서 오히려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불투명했던,

산만했던 생각들이 많이 정리됐던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밖에서 많이들 했는데, 재판을 하면서

보니까 국가보안법의 최대 피해자는 검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속돼 있는 것은 크게 불편하거나 하지 않고 많이 익숙해져가고 있는 상태였었는데,

재판하면서 검사하고 대화를 하고 신문하는 과정에서 같은 세상을 살면서 정말 너무 다른 상식과 기준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관성에 묶여있는 검사님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관성의 울타리에 묶여있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단식 기간이 길었고

지금도 복식 중인데 한 인간으로서 극한적인 과정을 겪고 난 느낌이나 깨달음이 있다면?

■ 단식 42,43일째 가니까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구속 때문에 내가 옥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어떤

구속도 이제는 나를 묶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상렬

목사님이 오셔서 허세옥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 저한테 전해주시면서 간곡하게 끝까지 살아가지고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도록 싸워야 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 말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일리가 있고 지금부터의 싸움은 구속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안의 관성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복식을 하면서 오히려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재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순간 순간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이 오히려 구속보다도 더 큰 질곡이 아닌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구속보다도 단식으로 인한

고통보다도 더한 것은 끊임없이 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성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나오기 직전까지 들었던 생각이었다.

□ 밖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투쟁라든지 이시우 작가 석방 움직임이 많았는데 그런 소식을 듣고 있었는지? 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밖에서 면회 오신 분들을 통해서 바깥 움직임들에 대해서 계속 얘기를 들었는데 역시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상황을 잘 이해 못하듯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도 얘기를 끊임없이 듣지만 역시 감옥 밖의 상황을 실감나게 이해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전혀 낯선 분들이 면회와 찾아주시고 감동스런 말씀을 전해주실 때 큰 힘이 됐었고, 저의 어떤 힘이나 이런 것과 전혀

관계없이 밖에서 활동해주시고 밖에서 준비돼 있었던 어떤 역량, 그런 정성과 힘들이 모아져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환기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역시 이것은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신념이 모아졌기 때문에 전적으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 재판

과정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상당히 특이한 재판이었다. 1심 재판이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재판과정을 평가한다면?



■ 저도 검사가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순간순간에 개인적으로 이성적인 분이라는 것과 관계없이

국가보안법을 다루고 있는 검사의 어쩔 수 없는 비이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변호사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준비에

제가 무척 감동을 많이 받았다.

이번 재판에서 검사는 스스로 너무 방대하게 혐의를 걸어놨고 방대함 때문에 준비하는 것도 벅차했고

아마 중심을 잡는 것도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보기엔 너무 단순한 사건이다. 검사는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혐의를 씌우려고 하는 아주 간단한 초점을 계속 못잡고 우왕좌왕 헤맸던 것 같다.

변론과정에서 그 전과 다르게 프리젠테이션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보면서 재판을 하니까 저도 그 장면 자체가 무척 감동스러웠고, 판사님이나 다른 분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훨씬

수월했었고, 인상 깊게 변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 재판 과정에서 보면 검찰 측이 기소한 내용이 기초사실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 보였는데,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흐름을 어떻게 보나? 이번 보석 석방도 좋은 징조로 보인다.



■ 섣불리 예측하거나 할 수는 없는데, 아마 차츰차츰 검사님도 이것이 창작의 문제라고 하는 쪽으로 초점을 잡아가는 것 같다.

검사님이 마지막에 제시한 증거자료도 밖에서 끊임없이 작가들이나 사진가들이 창작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많은 글들을 썼던 것에 대해서 그것을 반론하기

위해서 무척 고심을 많이 했더라.

아마 그래서 역시 창작의 문제로 초점이 잘 잡혀가면 국가보안법과 창작의 자유문제로 연관되면서

쟁점이 되지 않을까. 저는 형량이라든가 이런 것과는 관계없이 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참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담장 안에서도 유엔사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든지 정상회담에 NLL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든지 이런 소식을 많이 들었을텐데, 물론 부분적인 기고활동도 했지만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런 소식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 역시 정상회담 소식을 접해듣고, 정상회담 의제가 평화체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는 소식까지 접해듣고 하니까 아, 이것이 역시

대세가 그리로 갈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유엔사 문제를 제기했던 것도 이런 대세가 잡혀나가기를 바랬던 것인데, 이젠 뭐 제가

그걸 주장했다 말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큰 흐름 속에서 방향이 잡혀질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한 시대가 이뤄낸 큰 성과다라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 밖에서 이 작가의 사진전도 열리고 사진집도 재판을 찍고,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작가가

알려졌다고 하거나 부각됐다고 보는데, 개인적 소감은?

■ 저는 완전히 무명작가였었는데 이 사건 때문에 굉장히 과장돼 가지고

알려지게 된 것 같고, 하여튼 공안당국 덕분에 제가 유명작가인 것처럼 뻥튀기가 된 것 같다. 이 공은 전적으로 공안당국에 있는 것 같다.(웃음)



□ 부인께서 석방활동을 열심히 했고 아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가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도 이번에 제 처나 아들한테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했는데, 평상시였으면 전혀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놀라운 잠재력이 처한테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사건이 이렇게 많은 분들한테 알려질 수 있었고, 감옥 안까지 제 귀에, 가슴에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마 김은옥 씨의

역량이었던 것 같고, 그 역할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도 이번에 인간 김은옥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 아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 우리 아들도 아빠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었어도 그냥 뭐 그냥 아빠니까, 아빠가

하는 것 정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재판도 와서 참관하고 문화제도 참관하고 그 과정에서 읽었던 글이라든가를 제가 안에서 전해 들었다.



항상 우리 아들을 안아주고 마주해줄 기회가 없었는데, 항상 위안으로 삼았던 말이 아들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었다. 아빠가 가는 길을 아들은 그 등을 보고 따라 온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




<속보> 이시우 작가 서울구치소서 보석 석방



14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평화운동가이자 통일뉴스 전문기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보석 석방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정희 변호사는 14일 낮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주에 보석청구서를 냈고 오늘 점심 때쯤 보석 결정이 났다”며

“절차가 완료되고 짐을 정리한 뒤 오늘 오후에 출소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성실하게 심리해주고 있고, 공소제기와 구속이 예술에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라는 점을 고려해준 것으로 생각돼 일단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고 재판부에 사의를 표한 뒤 “이시우 작가가 나와서 건강을 잘 회복하면 이 사건에 대해 더 풍부하고 많은 주장과

자료를 제시하고 재판을 충실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너무 기쁘다.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잘 된 것 같다. 재판부에도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그동안

어머님과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된 것 같다. 그동안 아들이 아빠가 없어 우울해 해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아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다”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부인 김 씨는 “특히 이시우 사건에 작가 분들이 많은 애를 써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도 묘하게 작가 분들 면회오신 날 소식을

듣게 됐다”며 “보석으로 나온 것이니까 나와서 재판을 잘해서 무죄가 될 때까지 마무리를 잘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 4월 19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돼 서울 옥인동대공분실에서

경찰조사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로 이감돼 검찰 조사를 받고 1심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이시우 작가의 보석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지인들은 서울구치소 앞으로 환영나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