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서대문형무소에서…(활동후기)

By |2008-05-21T09:25:26+00:005월 21st, 2008|옛 게시판/옛 회원게시판|

서울KYC 평화길라잡이로 활동하고있는 김서정 회원이

지난 5월 18일 활동 후 쓴 활동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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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나는 참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하며 보낸 것 같다. 존재와 무? 뭐, 그런 실존적인 고민을 약간 폼나게 하며 보냈다는 것이다. 그 무렵 세상은 끔찍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에 그 무렵에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나는 어떤 행동들을 했을까? 

광주에서 계엄군에 맞서 총을 든 사람이 간첩의 사주를 받은 폭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평범하게 살던 시민들이고, 살육의 끔찍한 짓을 버젓이 행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아니라 권력에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세월이 지났으니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나도 싸웠을 것이오.” 

과연 그랬을까? 안 그랬을 것 같다. 

요즘 신문을 보고 있으면 온갖 복잡함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다.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가?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왠만하면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데, 아둥바둥 수입하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글쎄, 우리의 10대들은 그냥 거리로 나와 버렸다. 미친 소 먹기 싫단다. 미친 교육 받기 싫단다. 연일 신문과 인터넷을 도배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안타까웠는데, 며칠 지나자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저녁(5월17일) 나는 가족과 함께 일찌감치 청계천 광장에 갔다. 

앞자리에 앉아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가족과는 작년 노무현 탄핵 때 나와보고 두 번째인 것 같다. 이슈만 다를 뿐 늘 그렇듯이 집회는 유쾌발랄 혹은 비장하게 흘러갔다. 간간이 아는 사람 만나 눈인사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는 동안 청계천 주변에 어둠이 내렸고, 사람들은 촛불을 밝혀 들었다. 잠시 뒤 자유발언이 이어졌는데, 막바지 무렵 한 사람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소고기 반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강기갑, 강기갑! 외쳤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내 아들이 다른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양기탁, 양기탁!” 나는 무심히 들었다. 그런데 또 “양기탁, 양기탁!”을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이 심심해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르기에 그 연유를 묻고 싶었으나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유발언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아들은 힘들어했다.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눈도 스르르 감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참석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기야 5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앉아 있었으니 힘들 만도 하겠지! 

밤늦게 들어와 고단한 잠을 자고 있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어 토했다. 찬 공기에서 찬 것을 먹어 체하기도 하고 배탈이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집회 장소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한 것 같기도 했다. 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촛불제에 참석한 한 학생의 귀를 잡고 끌어내 조사를 했다는 사회자의 말을 아이가 몇 번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일기에 촛불제 간 것 안 쓸래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런 심리 때문에 수백명의 교감과 장학사가 현장에 파견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이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다음 날 약속이 모두 깨졌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일요일 나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간 다음 다시 동네로 돌아와 사우나를 하기로 했는데, 아이는 꼼짝없이 누워서 하루를 보내야 했으니까 말이다. 

밥도 못 먹고 있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어제의 그 “양기탁 양기탁”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서대문 형무소에 가면 양기탁 사진이 있다고. 

아, 그렇지. 신채호 등과 국채보상운동, 신민회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였지. 105인 사건으로 서대문에서 4년을 복역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지. 그런데 그 양기탁 사진이 어디 있더라….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아이도 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양기탁 사진이 서대문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아픈 아이를 뒤로 하고 서대문 형무소로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하러 갔다. 그런데 오후부터 온다던 비가 아침부터 내리는데 그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줄 모른다. 가는 동안 나는 그저께 본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518일 당시 사회를 보던 시민군이라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 그 사회자는 그 비가 바로 죽은 시민군의 눈물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우산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오늘 비도 그런 비인가? 그러면서 나는 잠깐이라도 518과 소고기 문제를 서대문에서 언급하고픈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디서 하지? 

그렇게 12시 40분 무렵 서대문에 도착하였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비는 여전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길라잡이 안내물이 안 보였다. 근무자에게 이야기하니 찾아서 갔다 놓겠다고 한다. 이거 비 오는 날 안내 쉽지 않겠는데. 그런데 그 우려는 금방 없어졌다. 비가 오는 데도 관람객은 들어오고 있었고, 1시 안내를 알고 오는 관람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상물 상영이 끝나고 안내를 시작하였다. 안내 초반 아이들에게 시선을 맞춰 멘트를 날렸으나 아이들이 크게 반응을 하지 않고 오히려 어른들이 적극적이다. 그리고 젊은이 두 사람은 수첩을 꺼내들고 계속해서 내 말을 적는다. 1층 안내를 끝내고 2층으로 가서 다시 관람객의 눈빛을 살펴보았다. 어른들의 의지가 아이들보다 강해보였다. 그래서 나는 2시간짜리 안내를 하기로 했다. 

모형도에서 안내를 끝내고 수형기록표 있는 곳에 서 있을 무렵 한 사진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언뜻 보니 정말 강기갑 의원 같았다. 이름은 분명 梁起鐸(양기탁). 그래서 유관순, 한용운을 말하면서도 나는 양기탁을 어떻게 소개할까 생각해보았다. 

“요즘 미국산 소고기 반대 운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이 누구죠?” 

관람객이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그 분과 생김새가 아주 비슷한 분이 이 안에 있습니다.” 

관람객이 양기탁 사진을 지목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 분은 양기탁인데, 강기갑 하고 똑같죠.” 

관람객이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겸연쩍어 웃고 말았다. 

이번에는 사형장 절개도 앞. 뭔가 새롭게 할 방법이 없을까? 그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진 앞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멘트가 떠올랐다. 이승만 사진을 지목하고 나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감옥에 참 많이 갔다고 했다. 그중에 서대문 형무소에 복역했던 대통령이 있었는데 이승만, 김대중, 이명박이라고 했다. 사실 518을 이야기하고 싶어 김대중 대통령을 꺼냈는데,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도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관람객도 있었다. 어쨌든 사형장 절개도에서 안내하던 중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다시 언급했다. 직접 이름은 이야기하지 않고, 작년 대선 후보 중 사형제도를 찬성한 분이 딱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2층을 마치고 지하 고문실로 가서 안내하는 동안 나는 518을 잠깐 또 언급했다. 친일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장면을 언급하고는, 우리는 우리 민족을 고문하고 죽이는데 너무 익숙한 것 같다고. 그렇게나마 나는 518의 그 어느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을 씻으려고 했다. 

보안과청사를 나와 옥사를 돌고 나오니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졌다. 그런데도 관람객의 눈빛은 여전히 진지하기만 하다. 그래서 야외를 도는 동안에도 준비한 멘트를 모두 쏟아냈다. 마지막이 되니 목이 약간 쉰 것 같았다. 빗소리보다 크게 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안내는 두 달 만이다. 전 달에는 모니터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시간에 걸쳐 안내를 끝냈다. 사무실로 들어와 승기샘을 기다리려고 했으나 아픈 아이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오늘의 관람객에게 웃음을 준 계기(?)를  마련해준 아이를 말이다. 그러고보니 아들은 서대문 형무소 구석구석을 나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승기샘에게 미안했지만, 폭우를 뚫고 집으로 왔다. 아이는 웃음을 잃고 죽만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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