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국민들이 지배한다는 환상이 작동한다면

By |2008-06-16T09:28:07+00:006월 16th, 2008|옛 게시판/옛 회원게시판|

환상은 그 밖의 다른 것들만큼이나 실재이며 아주 중요한 것일 수 있다. 투표는 하나의 과정으로 그것을 수단으로 해서 어떤 형태의 사회유기체(국가)가 삶을 꾸려 나간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대안들을 선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즉, 이런 과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저런 과정을 따를 것인가? 투표는 실천의 대안적인 과정들 사이의 선택과 관련된 요소들과 힘들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의 역할은 개인에서 선택의 결정과 유사할 수도 있다. 즉, 먹을 것인가 잘 것인가 아니면 어떤 다른 행동 경로를 따를 것인가? 현명한 선택은 개인의 욕구와 자원의 평가에 달려 있다. 국가와 관련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즉, 국가는 이렇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렇게 해야 하는가? 현명한 선택은 관련된 다양한 요인들의 비중과 힘을 사실적으로 평가하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선거 과정은 이러한 요소들을 측정하고 검토하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선거는 단순히 국가의 시민에 대한 선전의 수단으로 정부가 힘을 쓰는 영향력의 결과를 측정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아무튼, 선거는 측정수단이며, 판단의 기준 또는 지표이다. 대부분의 투표는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요인에 대하여 어떤 한 요인의 우위, 또는 요인들이 집합의 우위임을 나타내 준다. 고정된 시간과 간격으로만 이러한 측정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선거과정에서 완전한 이득을 끌어 낼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누군가 급박하게 요구할 때 측정, 즉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국가적인 선거라는 성가시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의례를 치를 것이 요구될 지도 모른다.

만일 민주주의가 국민들이 지배한다는 환상에서 작동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아마도 더욱 심한 환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실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법칙을 그 액면 가치로 취하는 과정을 당연한 일로 치부한다. 독재는 민주주의보다 더욱 고도로 통합된 통치방식이다. 그러므로 결국에 통합과 통제의 정치적 메커니즘은 민주주의에서 이에 상응하는 메커니즘보다 사회유기체의 더 작은 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보다 독재체제에서 덜 지배적이다. ‘위’장‘하’지‘ ’않‘는’ 독재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제적인 지배 메커니즘보다 대중의 의지에 좀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재의 경우 독재자는 분명히 통치의 단점이나 오류에 대해 책임지게 될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지배한다면> 책임은 궁극적으로 실제 지배 메커니즘보다는 국민들이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하나의 망상이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이>지배한다는 것을 공표하고 있지만, 모든 국민이 아니라 오직 특별한 부류, 즉 선택된 사람들이 지배한다. 최근 사회 진화의 과정은 이러한 슬로건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논리적이고 사회학적인 면에서 모순이다.

– 어느 학자의 1949년쯤에 엮어 만든 책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