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12월 19일) 저녁 나는 서울교육청에 가보았다. 인터넷에 뜬 최혜원샘(평화길라잡이 3기)의 동영상을 보는데 문득 한번쯤 그곳을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일이 터지자마자 진작 갔어야 했는데 미적미적 미루다가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만은 기필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해임 파면된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그 선생님과 함께 울먹이며 어른을 원망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서다. 그 아이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이 사회가 원망스럽고, 그런 상처를 주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태 수습만 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기가 막혀서다.
한 아이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보듬고 가야할 교육자들이 눈엣가시 같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고 아이들도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그 행태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방법은 뭘까?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하루라도 빨리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냥 서글픈 마음 달래려, 고생하는 해임 파면(?) 선생님들 있는 장소에 가서 쪽수나 하나 늘리고 오는 거, 그게 전부일 것이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우리 평화샘 얼굴도 볼 겸 해서 무턱대고 교육청으로 갔는데, 집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더구나 우리 평화샘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문자를 넣어보니 군산으로 출장 가 있다고 한다. 내용을 더 자세히 물을 수도 없어 나중에 또 오겠다는 문자를 보내곤 그 자리를 떴다.
어둠 짙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교육청을 떠나며 오래전 전교조 교사들을 떠올렸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직업을 가진 그들은 정말 좋은 교육해보겠다며 싸우다가 막장에 몰렸다. 아무런 후원도 없어 그들은 우유배달, 신문배달, 방문 판매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런 사정은 내가 사범대 출신이고, 또 졸업 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을 했기에 대략 안다. 나는 물론 선생을 해본 적도 없고, 그래서 전교조 교사는 더더구나 아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일이 다른 일보다 더 관심이 가고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 내가 그런 곳에 있어서! 아니 내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라서!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아마 이 일의 당사자를 내가 아는 사람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평화샘은 이 일이 터지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상황이 어찌돼든 우리 도와주실 거죠?” 그 말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 늘 가슴이 무겁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무작정 나섰던 교육청 방문길, 쓸쓸하게 돌아오는데, 마침 아는 후배한테 전화가 와, 우리 동네에 가서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 다음 날 내게 중요한 일이 있어 적당히 마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만 술잔을 들이켰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평소에는 그렇게 잘 틀리던 기상청 예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밤에 비가 온다더니 진짜 비가 내렸고, 그래서 술을 더 마셨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준비한 우산이 없어 더 술을 마셨다. 아무튼 하루의 이러저러한 감정들이 술잔에 푹 빠져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는 하루를 끝냈다.
다음 날 나는 숙취로 인해 고생하고 있었다. 늦게 잠을 깨었고, 정신도 몽롱했다. 아, 갑자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가서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시고 그래야 하는데, 이렇게 쓰린 속으로는 단 한 잔의 쐬주도 마시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일어나 어디를 간다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왔고, 아들은 거실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가 다가와 나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평화길라잡이 KYC 상 받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들이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아들의 참마음을 느끼고는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한테 그리 잘해주지도 못하고, 그리 훌륭한 아빠도 아닌데, 아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다니, 뭐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들과 좋은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숙취로 인해 나는 잠깐 또 잠에 빠져들었고, 다시 잠에서 깬 다음 경건하게 상을 받기 위해, 숙취를 없애기 위해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아들과 함께 전철을 타고 송년회가 열리는 장소로 가는 동안 아들은 잠깐 잠이 들었다. 그 아들을 보다가 이런저런 모습들이 영화처럼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하려고 한 일에 그것이 필요해 수업만 듣고 끝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안내 실습을 하며 엄청 떨었던 순간, 젊고 맑은 평화샘들과 어울리며 내가 밝아져 가는 모습들, 평화길라잡이를 한답시고 울뚝불뚝한 성질이 다소 누그러지는 것을 보며 좋아하는 가족들, 드디어 서서히 안정적으로 안내를 하고 있는 내 모습, 서대문을 넘어 전쟁기념관, 오두산전망대까지 영역을 넓혀가려는 내 열정, 마음고생 심했지만 뿌듯하기만 했던 평화학교, 그렇게 그런 일을 하며 만났던 소중한 사람들 등이 떠오르다가 최근 내 모습이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에 반성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오늘 받는 상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상을 주는 사람들의 정성어린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제대로 나를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조금 싫은 사람이다.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많이 느꼈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을 반복하는 선생님을 보고 나는 저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 때문인지, 학점이 모자라서 그랬는지, 기회가 닿지 않아서 그랬는지 나는 선생의 길로 접어들지는 않았다.
아무튼 2년 정도 안내를 하다 보니 타성에 젖은 것은 사실이었다. 새로운 매뉴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일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그냥 내가 안내를 해야 할 날이 다가 오면 기존에 했던 것을 반복하는 못된 타성에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부터 말이다. 그리고 금년 안에 마무리하려고 했던 일도 잘 끝내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하려는지 내 스스로 의문이 들고 하지 말자는 쪽으로 생각을 몰아가기도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이 세상에 말이다.
그래서 전 같으면 이틀 연속 안내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어물쩍 안 하려고 했고, 열정적으로 더 많은 준비를 하고 그걸 내 안에 소화시켜 심금을 울리는(?) 안내를 하고 싶은데 내가 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탐욕과 경쟁이 가득하고 생존이 위협받는 불경기에 평화와 통일은 조금 있다 생각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 한 마디로 이 활동을 안 하는 쪽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럴 수가 없었다. 경복궁역에 다다르자 나는 아들을 깨워야했고, 그 아들의 눈을 보며 나는 이 활동을 문득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이 나를 자랑스럽다는 말을 두 번인가 했는데, 한번은 서대문에서 관객들에게 안내 끝나고 박수 받을 때이고, 또 한 번은 바로 지금 상을 타는 것이었다.
아, 어찌할 것인가? 그래, 이제 다 왔으니 즐겁고 신나게 시간을 보내다 오는 수밖에. 그렇게 경복궁에 내려 송년회 장소에 다다르자 역시 젊음이 좋았고 단체 성격이 보여주는 활발함과 밝음이 좋았다. 아들은 금세 그 분위기에 적응했고, 이내 벌어지는 행사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동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내가 몇 번 나오나 손가락으로 세어보았고, 맛있는 유기농 뷔페를 먹은 뒤 나만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는 입에 가득 미소를 지었고, 내가 올해의 서울 KYC 회원상을 받자 얼른 뒤따라와 장미꽃을 주면 좋아라했다.
아무튼 화기애애하고 밝고 명랑 쾌활한 송년회를 끝내고 나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가야했다. 모든 샘들과 함께 2차를 가고 싶었지만, 아들도 있고, 또 전날 과음도 있고 해서 집으로 가는 게 옳을 듯싶었다.(먼저 가서 미안하고, 준비하신 샘들, 참석하신 샘들, 모두 고생하셨어요. 특히 평화길라잡이 4기 발대식 넘 축하드려요.)
그렇게 송년회 장소를 떠나 경복궁역으로 가는 동안 아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좋은 경험했다. 송년회가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리고는 또 나를 안으며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일을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아들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이 상을 받는다고 해서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이제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하고 그래서 더 많은 평화를 알리고, 아들한테 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라고 하는 하늘의 선물인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들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몸을 나에게 기댄 채 말이 없었다. 쉬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나는 어둠 짙은 터널을 지나는 지하철에서 또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먼저 오늘 평화길라잡이 명찰 받은 4기샘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3년 전에 그것 받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이 명찰 목에 걸고 안내를 꼭 해야 하나, 그냥 도망갈까? 내 안내 연습 대상자였던 아들도 도망가는데 관람객은 더 심하지 않겠어.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해서인지 여기까지 왔다. 나도 참 신기했다.
아무튼 앞으로 수료식이 끝나고 정식으로 출발하는 4기샘들과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도 같았다. 아니 지금도 너무 열심히 하고 계신, 1, 2, 3기 샘들 모두와 함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도 같았다. 안내는 물론이고 우리 평화길라잡이의 염원인 평화기행도 떠나보고 싶고…..
그러는데 또 한 사람이 떠오른다. 평화3기가 모이던 첫날부터 열성을 보이고 그리고 평화지기를 맡으며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하신(그 평화샘의 노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지 나는 늘 감탄한다.) 우리 최혜원 샘의 얼굴이 말이다.
빨리 일이 잘 매듭되어 우리 최혜원샘이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신나게 놀며 공부하고, 그리고 주말이면 우리와 함께 평화활동을 열심히 하고……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한다. 그게 평화길라잡이가 바라는 세상이고, 서울KYC가 바라는 세상이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세상일 것이다.
아무튼 저에게 이런 과분한 상을 주셔서 고맙고, 내년에도 우리 모두 열심히 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서정(평화길라잡이 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