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6월!
역시 6월은 6월항쟁입니다!!!
이번달은 6월항쟁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실내강의와 현장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6월 12일 목요일에 진행된 이신철 선생님의 실내강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후,
87년 6월 항쟁까지 현대사의 흐름을 정리해주셨습니다.
5.18이후 한국사회는 ‘미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되었습니다.
‘작전통수권을 가진 미국의 허락없이 공수부대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광주와 미국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하여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미자주화 투쟁이 전국에서 발생합니다.
광주의 아픔. 반미, 민주쟁취, 호헌철폐, 직선제 개헌 등
전국 각지에서 온국민의 열망이 모아졌던
뜨거웠던 87년 6월
6월항쟁이 무르익기까지의 흐름을 함께 따라가 볼까요?
#1980년
서울역회군(서울대 심재철, 서울대 대의원회 유시민, 고대 신계륜)후
학림(전국민주학생연명-전민학련) 무림(시기상조론-준비론) 논쟁.
12월 11일 서울대 반제반파쇼 시위로 무림 대부분 체포. 강제입영(무림사건)
12월 9일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1년
2월 전민학련 와해.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 이태복) 선도체론.
적극 투쟁 주장 24명 연행(학림사건) 1981년 9월 부림사건 조작
#1982년
졸업정원제 실시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
4월 강원대생 성조기 공개 소각 사건
10월 원풍모방노조사수투쟁에 학생 동참/ 이후 1984년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투쟁,
목동철거반대투쟁,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노학연대 확산
11월 20일 광주 미문화원 2차 방화사건
#1983년
9월 22일 대구 미문화원 폭탄 투척 사건
(던져진 폭탄은 경비가 밀어내 정문으로 떨어졌고 정문에서 폭파되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을 묵인함으로써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을 지지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동기가 되어 일어난 사건들 중의 하나.
1983년 9월 22일 21시 33분 경 대구직할시 삼덕동에 2가에 위치한 미문화원 정문 앞에서 대학생
던진 강력한 폭팔물이 터져 미문화원에 주둔중인 대구 중부 경찰서 김철호 순경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언론은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이 한미간의 외교 분쟁을 노리고 행한 테러사건이라고 보도했다.
1983년 12월 8일 대간첩 대책본부는 다대포 해안에서 진충남과 이상규 등 2명을 생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에서 배후 조종한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12월 21일 학원자율화 조치, 복교허용, 학생회 부활
#1984년
9월 26일 서울대 프락치 구타사망 사건(경찰 재투입)
#1985년
2.12총선 신민당 승리
4월 17일 전국학생연합-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 결성
5월 23일 삼민투 산하 광주학살 원흉처단 투쟁위원회, 서울 미문화원 대학원 73명 점거. 72시간 점거/ 미국의 사과요구
#1986년
3월 18일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원회(반전반핵투위)
‘반전반핵 양키고홈, 친미독재 타도하고 미제국주의 몰아내자’ 주장.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 ‘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NL-PD
4월 28일 전방입소 거부 투쟁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김세진 분신. 신민당(김영삼, 김대중)의 용공비판
5월 3일 건국대 자민투 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결성식. 1290명 구속
민민투 계열 ‘제헌의회’운동, 자민투 자기반성 NL분화, 주사파 등장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치안본부 대공수사단)
1월 16일 첫보도(검찰 수사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1월 17일 의사 소견보도
2월 7일 고박종철 국민추도대회
3월 3일 49재 추모행사
4월 13일 호헌조치
-제39조 ①대통령은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한다.
-제41조 ① 대통령선거인으로 선출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30세에 달하여야 한다. 다만,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제45조 대통령의 임기는 7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5월 18일 천주교 정의사제구현전국사제단 고문치사 사건 진상 조작 성명 발표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6월 9일 연세대 궐기대회 행진 시도 중 이한열 최루탄 피격, 혼수상태
6월 10일 전국 22개 도시 ‘박종철 고문 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 시민대회’ 24만명 참여, ‘호헌철폐, 민주쟁취’ /
민정당 노태우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
6월 10일~15일 명동성당 집회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 16개 도시 247개소 150만명(시위 지방확산의 분기점)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 34개 도시, 4개군 100만 여명
6월 29일 6.29선언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자유언론의 창달,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등
7월 9일 이한열 장례식. 시청 운구
8월 19일 충남대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7-8-9 노동자 대투쟁. 87년 대선으로 인해 학생과 정치권의 방관
7월 5일 현대그룹 현대엔진 노조결성. 현대차 민주노조 쟁취본부
7월 하순 부산지역 대한조선공사, 세신정밀, 국제상사 등 대기업 투쟁 합류.
8월초 마산, 창원 지역, 대구, 구미, 광주, 전분, 수도권으로 확산.
8월 중순 전국 동시다발 투쟁. 여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 양태를 남성 노동자도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바꿔놓음.
8월 22일 대우조선 이석규씨 사망 사건으로 더욱 증폭된 노조 조직률을 86년 2675개 노조,
103만 5892명에서 87년 12월말 4103개 노조 126만 7457명 조합원으로 불과 몇 달 사이에 20만명이 넘게 급증.
대기업 노조 결성 시작. 산업현장의 민주화와 사회의 과제 제시. 전노협 건설의 토대 마련
NL, 비지(비판적지지)그룹 형성/ CA(Constitutional Assembly), 독자후보(백기완) 12월 14일 후보 사퇴
12월 16일 노태우 후보 당선
#1988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건설준비위원회(서총련), 서울지역대학생총연합건설준비위원회(서건추, 민중의당지지, 5월 서총련으로 통합)
3월 29일 서울대 총학생회 김중기 후보 ‘김일성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서한-남북학생체육교류 제안/
6월 10일 전대협 ’8.15 학생회담 제안‘하였으나 봉쇄당해 국토순례대행진. 통일운동의 대중적 확산
5공 청문회 시작. ‘광주학상 5공비리 주범 전두환 이순자 구속처벌 특별위원회’
11월 23일 전두환 백담사 행
12월 16일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전대협 초청(1월 20일 전대협 참가 답신)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 방북
6월 28일 ‘평양축전 결사참가 백만학도 결의대회’(한양대) 임종석(전대협의장) 임수경 학생 파견 발표
7월 1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
8월 15일 판문점으로 귀환
*87년 6월 항쟁의 의의
국가로부터 독립된 핵심적 계급으로 ‘시민’의 등장(ex.넥타이 부대)
노동운동의 시발/ 노동조합 및 노조원의 폭발적 증가, 생존권 중심의 경제투쟁->정치투쟁
대중적 통일운동의 시작
학술운동, 전교조 등 부분운동의 등장
광주를 통해 미국을 재인식하게되고,
6월항쟁을 통해 ‘시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며
우리사회 총체적 변화를 만들었던 1987년.
오늘 2014년, 6월 항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지켜온 민주정부. 민주국가.
우리는 지금, 민주화된 나라에
24년전, 온국이 열망했던 민주사회에 살고 있습니까…?!!!
이번 강의가
24년전 그날, 6월항쟁을 기억하며,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참가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