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1964년6월 23살 청년 이명박은 굴육적인 한일정담회담을 반대하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데모를 주도. 2008년 6월 67세 이명박은 자신이 44년전 외쳤던 구호를 청와대
주인이 되어 듣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속 되고 재판 받았던 경험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걸까요?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이어 오늘은 세종로를 컨테이로 막아 버렸습니다. 컨테이너 넘어에서 어떻게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걸까요?
21년전 87년 6월민주화 항쟁의 상징인 시청앞 광장으로 다시 시민들이 모입니다.
44년전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정권퇴진’을 목놓아 외치던 심정을 홀라당 까먹어 버렸을까요?
옛날 처럼 비장한 각오로, 조직적으로 하지 않고, 유모차부대, 중고생,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촛불을 드니까
무섭지 않은 걸까요?
100만개의 촛불이 올려진다는 오늘, 23살 청년 이명박때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래는 6.3사태 고려대 구국투쟁위 경찰 정보 공개 라는 2005.5.27연합뉴스기사내용
‘고대 데모 사건 개요’를 3월24일 봉기와 국회의사당 점거 →5월25일 궐기대회→6월1일 데모 좌절→6월2일 데모→6월
3일 국회의사당 앞 점거 시위라는 큰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시위를 주도한 단체로는 5월 31일 결성된 ‘구국투쟁위원회'(구국투위)를 지목한 경찰은 그 중심 인물로는
위원장 김재하(金載河. 당시 법대 재학)와 당시 고려대 단과대 학생회장들로서 부위원장들인 이경우(李炅祐.법대)ㆍ박
정훈(朴正勳.정경대)ㆍ이명박(李明博.상대)을 들었다.
이 ‘구국투위’ 조직표에서는 또 산하 부장들로는 최장집(崔章集.기획.정외과)ㆍ김덕규(金德圭.선전.정외과)ㆍ손옥백(孫
玉白.응원단장)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데모 주동 인물’로는 위원장인 김재하를 필두로 이경우ㆍ박정훈ㆍ손옥백ㆍ최장집ㆍ김덕규ㆍ김병길(金秉吉)
ㆍ김광현(金光鉉.역도부)을 지목했다.
이와 같은 경찰측 자료는 당사자 증언이나 이에 관한 각종 연구와 상당히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서 시작한 당시 고려대학생운동은 5월31일 밤, 더욱 강력한 투쟁을 위해 박정희 군사
정부의 퇴진까지 요구하며 ‘구국투위’를 결성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6월3일 오후 1시40분경에는 고려대 학생 주도로 국
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고려대생 외에 서울의대, 성균관대, 동국대, 서울상대, 숭실대 등 18개 대학 1만5천여 명이 참가했으며, 일반
시민까지 합치면 총 참여자는 3만 명 가량 됐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놀란 정부는 3일 오후 6시30분경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데모 진압과 시위 주동자 검거에 들어갔다.
이에 의해 시위 과정에서 ‘구국투위’ 집행부 중 손옥백이 검거돼 구속됐으며 계엄령 선포 이후인 6월15일에는 그동안
피신해 있던 위원장 이경우와 부위원장 이명박이 검거됐다.
이들을 포함한 고대생 13명은 서대문형무소로 이첩되어 두 차례 걸친 재판 끝에 공소기각 조처로 대부분 석방되었으나
이경우와 이명박은 동국대생 김실, 한양대생 이정재, 건국대생 박원규와 함께 내란죄로 5년 구형에 3년 징역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