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 걷기 시민강좌-정석/ 성북동 현장답사 장일규

By |2014-11-04T10:57:26+00:0011월 4th, 2014|서울KYC 뉴스|

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시민강좌.
오늘은 마지막 실내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1. 실내강의-10월 22일(수)
서울시립대 정석교수님과 함께 600년 역사도시 서울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
서울 도심부 역사보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합니다.

*서울 도심부 역사보전의 과제
서울만의 특별한 매력을 시민과 함께 공감하고,
서울에서 소중히 지켜야 할 유산을 정의하며,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원칙과 할 일을 담은 계획!

*서울의 특별한 매력은?
서울은 산과 강, 언덕이 아름다운 도시/ 자연지형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풍부한 역사문화유산/ 역사도시
자연 그대로 만든 도시, 백성들이 만들어온 도시/ 계획철학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도시 보전정책의 시작 : 1962년 문화재보호법과 도시계획법, 1975년 성곽복원사업
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역사복원 사업 1980년대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역사복원사업 1990년대
서울 도심부 관리계획수립(개발과 균형의 보전의 균형) 2000년대 이후

*베세토 연구(베이징-서울-도쿄 비교연구)
서울 역사도시 보전의 문제점 : 역사도시 보전 기본 계획 부재. 면단위 보호장치 미흡. 법제도 한계
-> 북경과 동경으로부터 얻는 시사점
 북경 역사문화명성보호계획 : 역사도시 보전 기본계획 수립
 동경 역사보전 법제도 : 문화재보호법+도시계획법+경관보전제도

*역사도시 서울의 보전과 관리방안
서울 역사도시 보전 기본계획 수립
서울 역사도시 선언  // 우선은, 도심부를 대상으로 역사보전 정책 수립

*도심부 역사보전의 핵심내용
서울의 정체성정의 : 서울의 특별한 매력과 정체성에 대한 공적 선언
서울의 역사문화유산 정의 : 서울에서 소중하게 지키고 보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서울 역사도시 보전원칙과 지침
서울 역사도시 보전계획 : 장단기 보전, 복원과제와 시책/ 사대문안 개발, 재개발 계획 재검토 및 조정

역사도시 서울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의 구체적인 사례로
북촌, 송현동 호텔 건립, 세운상가 개발 등을 가지고 토론도 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안은정 회원님께 선물 증정.

정석 선생님의 책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를 받고 기념사진 찰칵~

정석 교수님의 강의를  마지막으로 실내강의 총 4회가 모두 끝났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고, 출석률이 급 떨어져서 아쉬웠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내년에 더 좋은 강의와 답사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현장답사-10월 25일(토)

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시민강좌
“백악아래 펼쳐진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
마지막 현장답사는 백악을 중심으로 한양도성 밖으로 이어진, 성의 북쪽 성북동 답사입니다.
국민대 장일규 선생님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성북동으로 가볼까요~

최순우 옛집(崔淳雨 옛집)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며,
미술사학자인 혜곡(兮谷) 최순우(1916년 ~1984년)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처하였던 한옥.

개성 출신으로《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저자로 유명하며

한국미에 대한 빼어난 안목을 가졌던 최순우는
이 집에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아 넣으려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복개된 성북동천 옆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익어갑니다.

혜화문과 숙정문 사이의 한양도성이 부채꼴 모양으로 감싼 성북동은
조선시대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1765년 영조 41년에 설치된 연유로 동명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인 혜화문을 나서서 왼쪽 일대의 계곡마을인 성북동은
예부터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수석이 어울린 산자수명한 마을로
복숭아, 앵두나무가 많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곳입니다.
최순우옛집, 간송미술관, 이태준고택, 심우장 등 문화예술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성북동은 지금도 낡은 주택들과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어

60-70년대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1960년대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는 골짜기 채석장의 먼지 등
도시가 개발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성북동 북쪽은 서울을 대표하는 고급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유명한 이곳은 이태준 가옥입니다.
월북 작가 이태준이 1933년에 지어 ‘수연산방’이란 당호를 짓고,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거주하면서 단편으로는 달밤, 돌다리,
중편으로는 코스모스피는 정원, 장편으로는 황진이, 왕자호동 등 문학작품 집필에 전념한 곳입니다.

심우장(尋牛莊)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북향으로 지은 독특한 형식입니다.
이곳 성북동은 원래 성밖 마을 북장골, 한적한 동네로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의 도움으로 땅을 더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성북동에는 대사관저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길상사로 향합니다.

완전한 가을이 물든 길상사!
본래는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1916 ~ 1999, 법명 길상화)이 건물을 시주하여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습니다.

월북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진 기생 김영한은 신분차이로 인해 끝내 사랑을 이룰 수 없었고,
해방 후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백석과는 영영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대원각을 차려 크게 성공한 후에도 백석을 잊지 못해 그리움으로 지내던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였다고 합니다.





좌우대칭의 균형이 조화롭고, 독특한 건축양식의 성북동 성당.
대사관저가 모여있어서 그럴까요. 영어 미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성북동의 마지막 코스는 선잠단지 입니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이 단은 고려 성종 2년(983)에 처음 쌓은 것으로,
단의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고 궁중의 잠실(蠶室)에서 누에를 키우게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선잠단의 설치 이후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내다가
1908년 잠신이 의지할 자리인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그 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문화재청 펌)

* 10월 25일 성북동 답사 사진 더 보기 > http://cafe.daum.net/dosungguide/BePl/620



2014 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시민강좌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도성의 중심부에서 시작해서
한양도성의 남쪽, 동쪽, 북쪽까지 잘 마무리했습니다.
2015년 한양도성의 서쪽을 주제로하는 좋은 강의와 답사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S 참가자 여러분, 강의평가를 현재 진행중입니다.
메일 확인하시고, 구글 회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