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길라잡이 회원들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고양 금정굴
그리고 반공유적 1호인 태극단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비가 내릴수도 있는 오락가락한 날씨 속에
금정굴 평화인권재단 연구소 신기철 소장님과 함께했습니다.
고양시에서 일어난 금정굴 학살 이외,
한국전쟁 후 끔찍하고 잔인한, 민간인 학살이 전국에서 어떻게,
왜 그토록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 정상에 다다를즈음
위령제 현수막과 사진, 철문이 보입니다.
여기가 한국전쟁 당시 고양지역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곳입니다.
아늑한 숲속에, 이런 비극적인 현장이 방치된 듯한 모습으로 놓여있다니…마음이 무겁습니다.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된 금정굴.
한때 이곳은 금을 캐던 금광이었으나, 해방과 전쟁으로 멈춰버린 폐금광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가족 대책위와 고양시민사회단체에서 힘을 모아, 지금 이정도로 현장이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후끈한 열기와 함께, 좁고 긴 굴이 이어져 있습니다.
끝없이 내려가는 깊이는 18미터 정도~
학살 가해자들은 매일매일 발생하는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일제시대 폐금광으로 해방 이후로 방치되어 왔던 금정굴에서
자신들이 말하는 부역자 처벌을 자행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발발후 서울을 비롯한 고양파주는 고립되어, 피난을 갈 수도 없어
인민군 점령지역이 되었습니다.
9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비롯한 인민군 점령지역이 수복되고
대대적인 부역자 처벌이 벌어지면서,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납니다.
인민군 점령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생계수단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갈데도 없었고
그곳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미군과 국군이 들어오자, 오로지 자신만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며 재빨리 국군,경찰의 앞잡이로 신분세탁을 하면서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사람이, 어제까지 이웃으로 지내던 누군가가
‘빨갱이’색출에 앞장서며 학살은 더욱 잔인해지게 됩니다.
적극적인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 후였고,
가해자들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부역자’들의 대다수는 월북한 자들의 가족과 친척,
인민군 점령시 강요에 의해서 부역한 소극적인 부역자들로
기껏 곡식의 낟알을 세는 정도의 일을 한 사람들,
또 개인적인 감정으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금정굴에서는 180여구의 시신이 발굴되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몇명이 희생되었는지, 누가 학살되었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유가족들이 증언을 하고, 목격자가 증언을 하면서
금정굴 학살사건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조금씩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의 인민군 점령 지역이었던 곳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군과 국군이 들어오면서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학살이 일상적으로 발생했고,
제대로 밝혀진 것이 손에 꼽히는 정도뿐입니다.
전쟁 속 인간의 광기는 제어가 안되었던 것일까요?
형식적인 단하나의 절차도 없이, 왜 이토록 무자비하게 자국민을 죽였을까..?
인간성을 상실하게되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전쟁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국민의 대다수는 전쟁이 난줄도 제대로 몰랐고,
어느순간 인민군 점령지가 되고, 다시 국군이 수복을 하면서 부역자, 좌익이 되었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그 후손들은 연좌제로 고통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입밖으로 낼 수도 없었던 긴 시간동안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던 그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생존자들이, 유족들이 돌아가시지 전에..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정굴에서 내려와, 태극단 사거리로 갔습니다.
태극단은 1961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우리나라 반공유적 1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한국전쟁 발발과 서울 수복 사이 약 3달간 경의선을 타고 통학하던 고양파주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일산 지역에 비밀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서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한,
반공활동을 중심으로 하기 위한 청년 240여명이 ‘태극단’을 결성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수복과 함께 고양지역도 함께 수복이 되었는데,
제일먼저 한 일이 1개월여간에 걸친 부역자 색출과 처단이었습니다.
이과정에서 경찰의 주도하에 태극단도 가담하게 됩니다.
고양에서만, 최소 수백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아무런 법적절차도 거지치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금정굴’학살사건.
우리는 쏘지 않았다. 단지, 망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증언에 따른 내용은 이것 뿐이라고 합니다.
금정굴과 태극단.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여전히 두개의 역사속에서 갈등과 반목하여 마주하고 있습니다.
진실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할 국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현실이 한스럽습니다.
이런현실이 비단 고양뿐이겠습니까?
전국의 수많은 지역.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모든 지역의 비극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그대로일 것입니다.
민간인들이 피난도 갈 수 없도록 국가가 방치했었고, (도시가 고립되거나, 다리를 폭파하거나..)
돌아와서는 무자비하게 학살을 저지르고
그 이후로도 진실을 은폐했던 것은 명백히! 전쟁범죄이자 국가범죄입니다.
그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것. 한국전쟁의 아픔을 잊지않는 것. 기억하는 것.
전쟁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일겁니다.
오늘 평화길라잡이 답사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답사에 함께 해주신 여러 회원분들 고맙습니다.
*6월 한국전쟁. 그리고 7월 정전협정을 맞아
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한국전쟁과 민간인학살을 주제로 합니다.
7월 10일(목) 실내강의
7월 12일(토) 현장답사(충북 영동 노근리 일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신청하기
P.S
아아아아 풀리지 않는 마음의 무거운 짐하나.
아무리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였을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자국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을까..? 도대체 왜왜왜!!!
끝나지 않는 전쟁. 소리없는 총성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노답
다시 생각해도, 한국전쟁은 정말 비극이다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