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일본 평화여행 – 요코하마 도쿄
지난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KYC 회원 15명이 함께 평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평화여행은 요코하마와 도쿄에서 일본의 개항, 제국주의 전쟁과
패전 후 이를 기억하는 일본의 모습까지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박 4일의 일정을 다시 한번 따라가면서 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8월 11일: 개항과 제국주의의 길 – 요코하마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 요코하마로 이동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을 찾아가면서, 일본의 개항을 알고 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래서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을 둘러보고, 개항의 길을 걸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그마한 시골이었던 요코하마, 그러나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곳에 당도한 이후
요코하마를 비롯 일본 전역은 개항과 함께 메이지유신이라는 전격적인 변화의 길을 가게 됩니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는 페리와 관련된 자료들과 함께
개항을 통해 변화하는 요코하마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항자료관 안에는 페리가 왔을 때도 자리했다던 나무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요코하마의 현재를 걸으며, 풍경을 보며 개항에 관한 기억을 찾아보았습니다.
개항을 하면서 통역을 위해 함께 들어온 중국인들이 형성한 차이나타운도 방문해보며
첫 번째 하루는 저물어갔습니다.
8월 12일: 관동대지진과 도쿄대공습, 재일한인역사관, 조선인 강제징용과 유골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그리고 도쿄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함께 했습니다.
봉선화 대표 니시자키 선생님으로부터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설명을 듣고
학살지로 추정되는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옆 풀밭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곳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당시 조선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학살지 근처에는 봉선화가 건립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인 학살의 주체를 명시했다는 의의를 가지는 이 비 앞에서
마련해온 추도 물품으로 간단한 추모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자주 가던 선술집 주인이 추도비 건립 터를 마련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우리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간단한 먹을 것을 챙겨주는 동네 주민을 보면서
일본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도움을 생각해봅니다.
이어서 찾아간 도쿄도 위령당은 관동대지진 당시 피난 온 사람들이
번져온 불에 타 사망한 사연을 간직한 비극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과 함께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대공습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데요,
이 유골 중에는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유골 또한 있습니다.
위령당 외부 한켠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도비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봉선화가 건립한 비와는 달리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모두 함께 절을 올리며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걸음을 재촉해 방문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는 재일한인들이 살아온 생활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재일한인들이 실제 사용했던 가재도구, 문서, 사진들을 보며
때로는 강제로 끌려와서, 때로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 온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조선학교, 국적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곳은 유텐지. 이곳에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키시마호 침몰사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이일만 선생님을 비롯해 도쿄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친구였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공사로 인해 유텐지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의 비극적 사건을 살펴본 오전부터의 일정을 돌아보며
짐작하기도 어려운,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한을 생각해봅니다.
이날 봉선화와 도쿄 진상조사단과의 만남을 통해서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고, 한 명 한 명의 삶을 끝까지 담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일한인’ 또는 ‘동경대지진의 피해자들’ 같은 집단적 개념으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반성하게 됩니다.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 WAM 그리고 야스쿠니 촛불행동
이날은 야스쿠니 신사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을 방문한 후
야스쿠니 전사자 유족 증언을 듣고 야스쿠니 촛불행동에 함께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문하기 전 잠시 들른 곳은 바로 이치가야 형무소 터.
일본 천황 암살을 기도했던 이봉창 의사가 사형을 당한 곳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형사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지만,
이봉창 의사과 관련된 표시나 관리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이와 같은 방치 상태가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알지 못하면 갈 수 없는 장소, 간다고 해도 크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기억한다’는 마음으로 함께했습니다.
뒤이어 방문한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과 함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전쟁에 끌려가야 했던 사람들도
전쟁영웅이라는 말로 무단으로 합사되어 유족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논란의 장소입니다.
일면 평안해보이는 신사 풍경 속,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전쟁이 낳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그것이 비단 죽은 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박물관인 유슈칸에서 더욱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가미카제에 동원된 제로센 전투기를 비롯해서
유슈칸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동상, 참전 군인의 유품 등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상징처럼 보이는 전시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전시물들은 전쟁의 책임이나 평화를 말하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어떤 희생을 긍정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슈칸에는 일본의 어린 학생들도 여럿 와서 둘러보고 있었는데요,
학생들이 그 전시품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답해집니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뮤지움(WAM).
이곳에서는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일본인들의 노력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WAM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자료를 모아나가고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의 위안부 지도 등 여러 가지 내용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안전한 와세다 대학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일정이 맞아 1년에 한 번 있다는 야스쿠니 공동행동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모여 야스쿠니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야스쿠니 합사와 전쟁에 반대하는 촛불행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요,
가족들이 야스쿠니에 있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지만 힘 있게
가족을 돌려달라 말하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스쿠니 합사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살아 있는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시간이 좀 더 흘러 세대가 넘어가면
이 문제가 또 해결되지 않은 채 쌓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됩니다.
행진을 통해서는 야스쿠니 합사와 전쟁에 반대하는 촛불을 위협하는 일본 우익의 모습을 실제로 보며
일본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8월 14일: 일본 제국주의 심장 속 독립의거지를 찾아서
마지막 날에는 도쿄에 있는 독립의거지를 찾았습니다.
오전에 찾아간 곳은 재일한국YMCA 건물 10층에 있는 2.8독립선언기념관.
이 건물 앞에는 2.8 독립선언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10층에 따로 기념관이 있습니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청년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독립선언의 전개와 의의를 나타낸 영상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쿄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청년들의 독립 선언!
이는 거국적인 3.1운동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국주의 심장을 강타한 독립의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평소 관광지로 지나칠 수 있는 황거와 도쿄역, 히비야 공원도
독립 운동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들도 함께 찾았습니다.
2.8독립선언 직후 주도자들은 체포되고,
이때 체포되지 않은 나머지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던 곳이 히비야 공원입니다.
그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당시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지나갑니다.
황거(고쿄)는 천황이 있는 중심지이고, 그래서 더 어려웠을 텐데도
우리가 익히 아는 이봉창 의사와 김지섭 의사가 각각 천황과 왕궁을 겨냥한 투탄 의거를 한 장소입니다.
지금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관광지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곳을 보며
과거 도쿄 한복판에서 있었던 의거를 눈으로 그리며 독립투사들의 담대한 의기를 헤아려 봅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도쿄역 호텔은 양근환 의사가 친일파 민원식을 처단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3박 4일의 어쩌면 일본의 개항부터 제국주의 전쟁까지를 파악하기에는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그 일정에 가능한 경험을 가득 담고, 만나는 장소와 사람들 속에서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사전답사부터, 또 현지 일정에서 통역과 안내를 비롯해 장소마다 발 벗고 나서
도움 주고 함께 해주신, 평화여행을 통해 만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에서의 소중한 만남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서로를 마주하면서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걸음을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