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근현대사아카데미 후기] ‘쌀수탈의 전진기지’ 군산을 찾아서

By |2016-07-21T07:24:19+00:007월 21st, 2016|서울KYC 뉴스|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얽혀있는 도시들을 방문하고 있는
서울KYC 근현대사아카데미가 7월 방문한 곳은 군산입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지역 평야에서 수확되어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쌀이 모이는,
그야말로 쌀수탈의 전진기지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던 군산에는
당시 적산가옥을 비롯해 일본식 건물들이 상당히 남아있는데요,

군산에 일제가 남긴 흔적을 살펴보며
‘일본이 철도와 같은 근대 시설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군산시 해설사 심규순 선생님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김재호 선생님이 함께했습니다.

군산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제지원료를 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된 철길인데요,
회사 근로자들이 철로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2008년까지는 기차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다니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철로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길로 사용된 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해서 군산의 근대를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군산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 적산가옥으로 개조할 예정인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군산에서 일어났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소개하고
1930년대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시설을 통해 군산 근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형으로 수탈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부잔교(뜬다리) 또한 수탈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큰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높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인데,
이 다리를 통해 쌀이 옮겨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쌓여 있는 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웠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부잔교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옛 군산세관입니다.
이곳 또한 일제가 쌀을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8은행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입니다.
쌀 반출 자금과 토지 강매 등 수탈한 자금이 이 은행들에서 관리되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줍니다.

다음으로 임피역에 도착했습니다.
일제는 호남 평야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했는데요,
군산선의 간이역인 임피역은 호남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습니다.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 또한 임피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이 역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본토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인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요구했는데요,
1927년에는 터무니 없는 소작료를 요구한 농장주에 대항해 수 백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19년 만세운동, 20~30년대 총파업투쟁 등 군산에도 저항 운동은 지속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대농장주는 구마모토 리헤이입니다.
현 발산초등학교 한편에는 정원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았던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등 여러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귀중품을 보관했던 금고 건물도 한켠에 텅 빈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견고한 벽, 두꺼운 철제 문과 숨겨진 가파른 계단이 이 건물의 용도를 말해줍니다.

근처에는 1920년대 구마모토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가 불러온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거주하며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사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입니다.
대웅전 뒷편에는 일본식 대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한 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뜻하는,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즉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는데요,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
일본의 지배 야욕에 불교가 가담한 행태에 대해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군산을 돌아보았습니다.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선생님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수탈의 도시로 만들어진 군산이
식민 유산에 대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건물조차도 일제식으로 만드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의 긍정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철길, 항만시설, 은행, 세관,
조선인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고 대농장을 가졌던 일본인 지주…
군산이 가지고 있는 유산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시설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8월에도 계속됩니다.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시민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 대통령이 머물던 곳,
가장 최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김해를 방문해 참여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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